ㅣ조부의 두더지정신 (타고난 기질)
조부(윤진영)는 소작농으로 소작료와 공과금을 내지 못하여, 두 아들과 세 딸을 데리고 야반도주(夜半逃走)하여 유민(流民)이 된다.
그리고 진영은 버려진 쓸만한 땅 ‘내건너’(지금의 ‘도중도’(島中島))로 옮겨 와 움막을 짓고 땅을 개간하며 농사짓는다.
진영의 ‘두더지 정신’은 내가 낳은 아들, 딸 그리고 손자들에게 나와 같은 가난을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땅을 두더지처럼 뒤진다고 하여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ㅣ말더듬이 교정 (타고난 기질)
봉길의 자당 김원상 여사는 맹모삼천지교에 못지않은 교육적인 어머니였다.
의사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조금 더듬었다.
봉길의 어머니는 그가 말 더듬는 것이 매우 걱정되었다.
그래서 밤에 의사가 공부를 할 때 엿들었다가 공부가 끝난 후에 자기 방에서 반복 학습을 시킴으로써 말 더듬는 것을 교정 학습한 결과
말더듬이가 고쳐졌다 한다.
ㅣ살쾡이 정신 (타고난 기질)
봉길은 매사에 지지 않으려는 승부 근성을 갖고 태어나 자랐다. 친구들과의 씨름판이 벌어졌을 때, 지면 상대방을 놔주지 않고 배고프면 밥 먹고 다시 시작해서 기필코 이겨야 놔 주었다.
친구들은 처음에는 이기나 결국은 져 주어야 씨름이 끝났다
ㅣ친구와 경쟁 (타고난 기질)
친구 황종진은 주막집 아들로 그의 부모는 아들을 서당에 보내는 대신 보통학교에 보냈다.
이에 반해 봉길은 백부 밑에서 천자문을 공부하다 서당으로 옮기려 했다.
이 때 보통 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황종진이 봉길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황종진과 놀다보니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봉길도 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신학문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친구의 아버지 최병천이 경영하는 서당으로 옮겨 구학문으로 대적한다고 결심하였다.
※ 당시 일제는 보통학교를 세웠으나 국민이 서당으로 몰렸기 때문에 입학생이 적었다. 그리하여 일제는 1918년 서당 폐지령을 내렸다.
봉길은 서당에서 성주록이 경영하는 오치서숙(烏峙書塾)으로 옮겨 본격적인 한학 공부에 들어가 열심히 학문에 임하였고, 내로라하는
성삼문의 후예 성주록 훈도가 더 가리킬 것이 없다고 하여 자퇴를 권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ㅣ결혼과 매헌 (타고난 기질)
1922년 봉길은 내포 홍성 전투에 참가한 배성선의 딸(배용순)과 결혼하고, 또한 그 즈음에 동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윤리를 얻게 된다.
성주록 훈도가 어른이 된 윤봉길의 이름을 그대로 부를 수 없어 아호를 지어준다. 성주록 선생은 성삼문의 후예로서 성삼문의 인격과 학문에 취한다.
성삼문의 아호가 ‘매죽헌’(梅竹軒)이다. 그래서 자신은 ‘매’자를 받아 ‘매곡(梅谷)’이라 하고, 윤봉길에게 자기 의 ‘매(梅)’자에다 ‘집 헌(軒)’자를 붙여 ‘매헌(梅軒)’이라 하였다.
ㅣ동학사상 (타고난 기질)
홍성 전투에 참가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장인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동학의 윤리가 매헌의 진취성에 작용되어 동학사상에 심취하였다.
결혼 후 매헌은 새벽에 일어나 동문 옆 우물가에 짚을 깐 후에 정화수를 상 위에 올려놓고 매일같이 동쪽을 향해 절하고 이 주문을 낭송했다고 한다.